엄경섭, Managing Director of MCTC
선교사 경력 전환을 말할 때, 보통 4가지 종류의 전환을 말한다. 사역 전환, 역할 전환, 지역 전환, 직업 전환이다. 그렇다면 선교사가 일반적으로 경력을 전환할 필요가 있을 때가 언제인가? 여기서는 3가지만 이야기하고자 한다.
- 선교지에서 떠나야만 할 때
이런저런 이유로 선교지를 떠나야만 할 때가 있다. 무엇보다도 먼저, 본인이나 가족 구성원 중에 누군가가 심각한 질병에 걸린 경우 선교지를 떠나야 한다. 선교지에서 추방을 당하거나 비자가 의도적으로 거부당했을 경우도 본의 아니게 선교지를 떠나야만 한다. 교회가 선교지를 바꾸기를 원하거나 지원을 중단할 때, 소명이 지속해서 흔들릴 때, 그리고 선교지에서의 삶이 지루하거나 사역의 열매가 없다면 선교지를 떠나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사역했던 선교지를 떠난다는 것은 어쩌면 가슴 아픈 일이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경력 전환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본의든 본의가 아니든 간에 자신의 삶과 사역에 변화를 주는 것도 인생에 있어서 의미가 있는 일이다. 그 변화는 자신의 성장을 함축하고 있기에 더욱더 의미가 있다.
- 자기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느낄 때
선교지에서 살다 보면 시간이 지나게 되고, 시간이 지나다 보면 선교지도 바뀌기 마련이다. 과거에는 선교지와 현지 교회에 자신이 필요한 존재였을 지도 모르지만, 요즘은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을 수 있다. 내가 에티오피아로 들어갔을 때에는 멩기스투(Mengistu) 군사 정권이 무너진 지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공산주의에 숨을 죽이고 있던 교회들은 기지개를 켜는 중이었고, 거의 모든 종류의 선교사들이 이 교회들을 돕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른 것이, 그로부터 25년에 이르는 시간이 흘러 에티오피아 교회에는 신학을 비롯한 각종 분야에서 교육을 받고 경험과 전문성을 획득한 지도자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그때에는 정규 신학 교육을 받은 지도자들이 드물었는데, 지금은 석사 학위는 물론이거니와 박사 학위를 받은 지도자들이 넘쳐난다. 에티오피아 경우, 그들의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는 전문성을 가진 선교사는 남되, 현지인들이 감당할 수 있는 분야들은 현지인에게 넘겨주고 떠나야 할 것이다.
현지인과 경쟁하거나, 현지인들의 직업을 빼앗거나, 현지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거나, 현지인보다 전문성이 떨어짐에도 그 일을 하고 있는 선교사들이 있다. 자신이 사역하고 있는 나라에는 자기와 같은 선교사가 이제는 필요 없다고 고백하는 선교사를 요즘 들어 종종 만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선교사가 떠나지 못하는 이유가 있는데, 안타깝게도 선교 때문이 아닌 다른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자신이 선교사로 존재 혹은 생존하기 위해 사역을 창출하거나 지속하는 선교사도 있다. 자신이 꼭 필요한 곳이나 사역이 아니라면 과감히 경력 전환을 시도하여야 할 것이다. 나라를 포함해 장소를 바꾸든지, 역할을 바꾸든지, 사역을 바꾸든 지, 아니면 선교사를 그만하고 직업을 바꾸어야 할 것이다. 현지 교회를 위해서 물론이거니와 가족과 자신의 인생을 위해서 과감히 경력 전환을 결단하여야 할 것이다.
- 의미 있는 삶과 사역으로 점프하고 싶을 때
현재 하고 있는 사역이 외적인 성공이나 실패와 상관없이 자신에게는 불만족스러울 수 있다. 현재의 일이 자신의 은사 혹은 재능, 아니면 관심이나 흥미에 적합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면 과감하게 경력 전환을 시도할 수 있을 것이다. 나에게 맞는 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자 하는 것은 나의 정당한 권리요 자유이다. 남이 요구하는 인생이 아닌 나의 인생을 살아야 한다.
또한 지금보다는 좀 더 의미 있는 삶을 살고 가치 있는 일을 찾고자 하는 욕망은 격려하여야 마땅하다. 성공적인 삶보다는 의미 있는 삶이다. 밥 버포드(Bob Buford)는 “지난 20년간 많은 성공을 거두는 사이 기력이 다하거나 좌절한 적은 없었지만 뭔가 빠져있다는 느낌이 들었고, 경기 작전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렀다”고 하면서 자신이 하프 타임(Half Time)을 저술한 동기를 밝혔다(버포드 2012:16). 일이 만족스럽다 할지라도 자신이나 세상에 좀 더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열망이 마음속에 있다면 경력 전환을 과감히 시도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이제는 골을 넣자
선교지에 있다 보면 지역, 역할이나 사역, 혹은 직업을 전환할 기회가 찾아 오기 마련이다. 대부분의 경우 그것을 잡지 못하는 것은 심하게 표현하자면 무식해서, 고집이 세어서, 교만하기에, 타성에 젖어 안주하고 싶기에, 혹은 변화가 두려워서 기회를 그냥 흘러보내 버리는 것이다.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찾아온다는 말이 있다. 기회를 놓치는 것은 자신과 선교에 해를 끼치는 죄악일 수도 있다.
인생을 축구와 비교해 보자면, 인생의 후반전에는 골을 넣어야 한다. “버포드는 “승부는 전반전이 아니라 후반전에 결정된다. 전반전에는 실수를 할 수도 있고 실수를 만회할 시간도 있지만, 후반전에는 그것이 싶지 않다”(37)고 말한다. 버포드는 이전 방식대로는 더 이상 경기를 지속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에게, “타임아웃을 요청하고 사이드 라인 밖으로 나와 중간 점검을 하라”고 권한다. “작전을 변경하기에 너무 늦은 때는 없다”(38).
선교지에서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느껴진다면 선교지를 떠날 때이다. 선교지를 떠나는 것에 절망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그러한 선교지에서의 복음의 진보와 교회의 성장에 감사해야 할 것이다. 이제 나는 나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으로 가면 된다. 내가 부족하다고 느껴진다면, 몇 년을 투자하여 내가 가고자 하는 선교지에 필요한 전문성을 개발하거나 경력 전환을 하면 될 것이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참고 문헌
밥 버포드, 2012. 하프 타임(Half Time): 승부는 후반전에 결정 난다. 이창신 역. 서울:국제제자훈련원
Leave A Comment
You must be logged in to post a comment.